청호웹진 11월호

여행으로 만나는 인도신화 이야기 6

뭄바이 엘레판타섬과 삼면(三面)의 쉬바신화

- 김진영 / 서강대학교 교수 -

쉬바는 브라흐마와 비슈누의 능력을 포섭하는 강력한 신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뭄바이(Mumbai)에는 세계적인 타지마할 호텔이 위치해 있다. 호텔 건너편의 네루 항구에서 배로 한 시간 정도 가면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엘레판타(Elephanta)섬으로 갈 수 있다. 이 섬은 ‘엘레판타 동굴’로 유명한데 힌두교의 쉬바(Śiva) 신에게 헌정된 동굴 사원들이 한군데 모여있는 쉬바의 성지다.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섬 입구에 있던 커다란 코끼리 석상을 보고 이 섬을 엘레판타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현지인들은 이 섬을 ‘석굴의 도시’를 뜻하는 가라푸리(Gharapuri)라 부른다. 엘레판타를 대표하던 코끼리 석상은 현재 섬에 없다. 인도를 식민지배하던 영국이 석상을 조각 내 영국으로 운반하려다가 실패하여 지금은 뭄바이 빅토리아 가든 동물원(Victoria Gardens Zoo)의 정원에 원형대로 복원되어 있다.

엘레판타섬에 도착하여 빨간 꼬마기차를 타고 섬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고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곳곳의 동굴마다 현무암에 조각된 쉬바의 얕은 부조(bas-relief)를 만날 수 있다. 조각마다 인도 신화의 쉬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데, 특히 거대하고 움푹 패인 머리가 셋 달린 삼면상 사다쉬바(Sadāśiva)가 가장 인상적이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도 음영이 확실하게 부각되는 정면 얼굴을 포함한 세 개의 머리가 도드라져 보인다.

page 엘레판타섬의 사다쉬바상

각각의 머리에는 쉬바신의 다양한 면모를 담고 있는 얼굴들이 새겨져 있다. 중앙의 얼굴은 차분한 면,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왼쪽 얼굴은 사나운 면, 오른쪽 얼굴은 온화한 면을 나타낸다. 혹은 세 개의 머리를 창조, 보호, 파괴라는 우주적 쉬바의 세 가지 본질적 측면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경우 오른쪽 반쪽이자 서쪽을 바라보는 머리는 창조신 브라흐마(Brahmā)이거나 쉬바의 여성적 측면인 우마(Umā) 또는 바마데바(Vamadeva)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머리는 쉬바의 온화하고 평화로운 얼굴에 부드러운 머리결, 상냥한 미소, 연꽃 봉오리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왼편 반쪽에 해당하는 동쪽 얼굴은 콧수염을 기른 청년의 얼굴로서 무시무시한 아고라(Aghora)나 혼돈의 창조자이자 파괴자인 바이라바(Bhairava), 혹은 무서운 파괴자인 루드라-쉬바(Rudra-śiva)로 알려져 있다. 이는 주로 뒤틀린 콧수염, 찡그린 표정, 헝클어진 머리, 두개골과 코브라 장신구를 통해 잔인한 특성을 부각시킨다.

중앙의 머리는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로 차분하고 명상적인 탓푸루샤(Tatpuruṣa)이며 유지와 보호의 신 비슈누(Viṣṇu)를 상징한다. 가운데 배치된 이 얼굴은 대주재신 마헤슈바라(Maheśvara)나 마하데바(Mahadeva)로서의 쉬바의 강력한 면모를 표현한 것으로 눈을 감은 채 명상에 들어 있다. 중앙의 탓푸루샤인 쉬바는 우주의 영원한 본질적 특성을 갖추면서도 창조, 유지, 파괴라는 세계가 현현하는 모든 측면을 균형 있게 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page 사다쉬바의 사나운 얼굴, 명상에 잠긴 얼굴, 온화한 얼굴이 삼면을 이루어 쉬바를 표현한다.
page 엘리판타섬에 전시된 사다쉬바의 조형물

이처럼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쉬바는 모든 존재의 다양한 양상의 주인이자 이를 조화롭게 만들어 지키는 수호자가 된다. 브라흐마, 비슈누를 쉬바로서 융합하여 스스로를 나타내는 쉬바의 삼면상은 세 가지 다른 형태의 신격을 표현하기 때문에 트리무르티(trimūrti)라고도 부른다. 비슈누가 몸을 바꾸는 화신(化身)인 아바타(avatar)라는 특성을 갖는다면 쉬바는 여러 가지 ‘형태(mūrti)’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트리무르티는 쉬바가 세계의 창조를 담당하는 브라흐마, 유지를 담당하는 비슈누, 파괴를 담당하는 쉬바 등을 포함한 힌두교 주요 삼신(三神, Hindu Triad)을 자신의 한 몸에 모두 구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말 그대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삼위일체설과 비교되는 힌두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Hindu Trinity)로서 브라흐마-비슈누-마헤슈바라(Brahmā-Viṣṇu-Maheśvara)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트리무르티는 힌두의 삼신을 원래 모습 그대로 배열하거나 하나의 목 위에 세 개의 머리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엘레판타섬의 트리무르티는 후자에 해당된다.

이처럼 쉬바가 브라흐마와 비슈누의 능력을 포섭하여 강력한 신이 된 이야기는 타라카(Tāraka) 아수라(asura) 신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타라카 아수라에게는 세 명의 악한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쉬바에게 살해당한 후 삼 형제는 엄청난 고행을 행하고 브라흐마신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삼 형제의 첫 소원은 불사(不死)였지만 브라흐마는 이는 들어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삼 형제는 각기 세 도시의 왕이 되어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며 세 도시를 단 한 발의 화살로 꿰뚫을 수 있는 자만이 정복할 수 있는 불멸의 도시여야 한다는 점을 소원에 분명히 언급한다. 브라흐마가 어쩔 수 없이 이 소원을 들어주자 삼 형제는 하늘에 금의 도시, 허공에 은의 도시, 지상에 철의 도시를 세워 폭정을 일삼게 된다. 인드라(Indra)신이 도탄에 빠진 신과 인간들을 구하고자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인드라가 브라흐마에게 달려가 해결책을 요구하자 브라흐마는 세 도시를 꿰뚫을 능력을 가진 신은 쉬바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들이 쉬바에게 달려가 세상을 구해달라고 하자 쉬바는 내가 가진 힘만으로는 부족하니 모든 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의 절반을 자신에게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신들은 쉬바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능력을 쉬바에게 전해주니 쉬바는 그때부터 위대한 주재신 마헤데바라 불리게 된다. 브라흐마는 전차를 몰고 비슈누는 화살의 화신이 되고 쉬바가 엄청난 화살을 당겨 아수라 삼 형제의 도시를 꿰뚫어 파괴한다. 인도 신화의 독특한 점은 창조, 유지, 파괴를 담당하는 위대한 삼신은 어떠한 갈등과 대립의 구조 없이 서로 간의 역할을 교환하기도 하고 도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세상과 선을 위해 기능한다는 것이다.

page 사다쉬바상 옆에 배치된 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구현한 쉬바상
page 뭄바이박물관에 전시된 사다쉬바상

또한 쉬바는 남성과 여성, 인간과 세계라는 이중성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로서 상반과 대립을 화해시키고 조정하는 신으로 엘레판타섬에서 사다쉬바상 옆에 배치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이 한 몸으로 표현되는 양성구유(兩性具有)라는 예술적 양상으로 표현되는데 이때의 쉬바를 아르다나리슈바라(Ardhanārīśvara)라고 부른다. 신체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어 가슴이 있는 여성과 가슴이 없는 남성이 융합된 모습으로 조각되는데, 쉬바와 배우자 여신 파르바티(Pārvatī)가 한 몸으로 그려지면서 남성적 에너지와 여성적 에너지가 하나의 신체에 구현되는 위대함으로 묘사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