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웹진 11월호

성보순례 6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관경변상도 서분

- 이기선 / 청호불교문화원 도서관장 -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관경변상도 서분

관경변상도는 정토삼부경 가운데 가장 발달된 경전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도설화한 그림이다. 『관무량수경』은 산스크리트나 티베트본은 없고 강량야사(彊良耶舍, 383~442)가 한역(漢譯)한 것만 남아 있다. 이들 정토 경전은 대체로 2세기 초 무렵까지는 성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북인도의 상업자본 사회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고 이해하고 있다. 『관무량수경』이 설해 지게 된 인연은 매우 비극적인 사연 때문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권을 빼앗는 패륜이 자행되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고, 마침내 그 참혹한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정토에 왕생한다는 장엄한 드라마가 펼쳐져 있다. 이제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비극의 현장은 마가다 왕국. 때는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고 계실 때였다. 당시 마가다국을 다스린 왕은 빔비사라였고 왕비는 위제희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왕권을 이을 자식이 없어 애를 태웠으며 아들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늦게 아들을 보는 기쁨을 맛보았지만, 태자는 본디 아들을 얻기 위해 살해한 선인(仙人)이 원한을 품고 환생했기 때문에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니 미리 태자를 죽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점술가들이 사뢰었다. 이 말을 곧이들은 왕과 왕비는 태자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시녀들이 남몰래 태자를 키웠다. 태자의 이름은 아사세였다.

자라서 이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아사세 태자는 그 원한을 갚고자 마침내 부왕을 궁중에 가두고 굶겨 죽이려 한다. 아사세가 부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게 된 배경에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서 출가한 제바닷타가 부처님의 지위를 빼앗아 승단의 지도자가 되려는 음험한 계략까지 겹쳐 있었다. 위제희 왕비는 남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에 꿀을 바르고 밀가루와 우유를 반죽하여 바르고 옥에 갇힌 남편을 찾아가 그것을 핥아먹도록 한다.

아사세왕은 이제 부왕이 굶어죽었는가 옥지기를 불러 묻자, 옥지기는 왕비의 행동을 사뢴다. 이에 아사세왕은 크게 화를 내며, 마침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까지 죽이려 한다. 칼을 빼어 어머니를 죽이려 할 때, “역사 이래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부왕을 죽인 일은 많으나 어머니를 무도하게 죽였다는 말은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라며 간곡하게 설득하는 월광(月光) 대신과 어의(御醫) 기바의 만류로 어머니인 위제희 왕비를 궁실에 유폐하였다. 깊은 궁궐 속에 갇힌 위제희 왕비는 이와 같은 참혹한 일을 당한 자신의 박복함을 한탄하며, 부디 부처님께서 오시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발원한다. 영취산(사굴산)에 머물고 계시던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위제희 왕비의 마음을 헤아려 아시고는 몸소 많은 성중을 거느리고 왕사성에 나투시어 극락정토에 대한 설법을 하게 된다.

page 〈관경서분변상도(觀經序分變相圖)〉의 전경(全景)

위에 적은 줄거리는 관무량수경이 엮어지게 된 인연 이야기이다. 불교 경전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경전의 내용을 설하게 된 인연 이야기를 서분(序分)이라 하고, 경전의 중심이 되는 내용을 정종분(正宗分)이라 하며, 경전을 지니거나 남에게 그 가르침을 펴서 얻는 공덕을 설하는 것을 유통분(通分)이라 한다.

이번 성보 순례는 관경변상도는 『관무량수경』 중 ‘서분’을 도해(圖解) 그림 즉 〈관경서분변상도(觀經序分變相圖)〉만을 소개한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 불화 중 ‘서분변상도’는 2점인데, 하나는 지금 소개하는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에 소장품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충선왕 4년(1312)에 제작된 일본(日本) 다이온지(大恩寺所藏) 소장의 〈관경서분변상도(觀經序分變相圖)〉이다. 〈십육관변상도(十六觀變相圖)〉는 5점이 남아 있는데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없고 모두 일본에 있다. 이 고려불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150.5cm, 가로 113.2cm이다.

그림은 왕사성의 비극을 한 화면에 압축해서 그린 작품이다. ‘서분(序分)’의 내용을 세 장면으로 압축하여, 하단부는 아사세 태자가 위제희 왕비를 죽이려는 묘사가 되어 있다. 중단부에는 부루나 존자가 유폐된 왕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법을 설하고 하단부는 석가불이 구름을 타고 와, 어떻게 서방극락에 갈 수 있는지 설교하는 것을 그렸다. ​오른쪽 아래 건물에는 아사세 태자(阿闍世太子)가 어머니 위제희(韋提希) 왕비를 살해하려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건물 기둥에는 이 장면을 설명하는 글인 ‘阿闍執劍欲害母大臣月光耆婆等切諫而止(아사집검욕해모대신월광기바등절간이지)’ · 守門臣(수문신)’이라는 변문(變文)이 씌어 있다.

오른쪽 위 건물에는 빈비사라왕(頻毘娑羅王)과 위제히 왕비가 합장하고 서 있다. 건너편 공중에는 목건련(目犍連)과 부루나존자(富樓那尊者)가 날아와 왕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다. 많은 시녀들을 그려 넣어 다채로운 구도를 이루고 있다. ​각 기둥에는 ‘頻婆娑羅王(빈파사라왕)’·‘韋提希(위제희)’·‘五百侍女(오백시녀)’, 두 존자 옆에는 ‘目犍連及富樓那從空而來爲王說法(목건련급부루나종공이래위왕설법)’이라 적혀 있다. ​다음 왼쪽 아래 건물에는 부루나존자가 빈비사라왕에게 열심히 설법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옆 기둥에 ‘世尊亦遣尊者富樓那爲王說法(세존역견존자부루나위왕설법)’이라는 글이 적혀 있어, 부처님이 부루나를 대왕에게 보내 설법하게 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page 부루나 존자가 빈비사라왕에게 열심히 설법을 하고 있는 장면

그런데 여기에서는 고려 충선왕 4년(1312)에 제작된 일본(日本) 다이온지(大恩寺所藏) 소장의 관경서분변상도(觀經序分變相圖)의 그림과 비교하면 부루나 존자에 비하여 대왕이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왼편 위쪽에는 2층 누각의 건물이 있고, 위제희가 공중에 계신 부처님을 향하여 울면서 호소하는 장면이 있다.

​위제희 뒤에는 6명의 시녀가 보이며 기둥에는 ‘韋提希號泣向佛(위제희호읍향불)’·‘五百侍甘女(오백시녀감녀)’라고 적혀 있다. ​건물의 중심부에는 석가·아난·목련 등 석가삼존과 제자들, 범천·제석천·천왕 등의 권속들이 구름을 타고 위제희를 내려다보고 있다. ‘佛○袛闍崛山沒○○當出 袛闍崛山(불○기사굴사몰○○당출 기사굴산’ 등의 글로 미루어 보아 기사굴산인 영축산(靈鷲山)

참고로 변문(變文)이란 절에서 속강승(俗講僧)이 신자들의 교화를 위하여, 불경의 이야기를 구어(口語)나 속어(俗語)로 알아듣기 쉽게 풀이해 준 통속적 설법에서 비롯한다. 일반적으로 정토나 지옥의 그림을 걸어 놓고 그 설명을 했기 때문에 설법의 대본(臺本)을 변문이라 했다. 민중이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원 소재를 교묘히 각색하고 고사(古事)도 엮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