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관경변상도 서분
관경변상도는 정토삼부경 가운데 가장 발달된 경전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도설화한 그림이다. 『관무량수경』은 산스크리트나 티베트본은 없고 강량야사(彊良耶舍, 383~442)가 한역(漢譯)한 것만 남아 있다. 이들 정토 경전은 대체로 2세기 초 무렵까지는 성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북인도의 상업자본 사회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고 이해하고 있다. 『관무량수경』이 설해 지게 된 인연은 매우 비극적인 사연 때문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권을 빼앗는 패륜이 자행되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고, 마침내 그 참혹한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정토에 왕생한다는 장엄한 드라마가 펼쳐져 있다. 이제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비극의 현장은 마가다 왕국. 때는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고 계실 때였다. 당시 마가다국을 다스린 왕은 빔비사라였고 왕비는 위제희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왕권을 이을 자식이 없어 애를 태웠으며 아들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늦게 아들을 보는 기쁨을 맛보았지만, 태자는 본디 아들을 얻기 위해 살해한 선인(仙人)이 원한을 품고 환생했기 때문에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니 미리 태자를 죽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점술가들이 사뢰었다. 이 말을 곧이들은 왕과 왕비는 태자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시녀들이 남몰래 태자를 키웠다. 태자의 이름은 아사세였다.
자라서 이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아사세 태자는 그 원한을 갚고자 마침내 부왕을 궁중에 가두고 굶겨 죽이려 한다. 아사세가 부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게 된 배경에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서 출가한 제바닷타가 부처님의 지위를 빼앗아 승단의 지도자가 되려는 음험한 계략까지 겹쳐 있었다. 위제희 왕비는 남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에 꿀을 바르고 밀가루와 우유를 반죽하여 바르고 옥에 갇힌 남편을 찾아가 그것을 핥아먹도록 한다.
아사세왕은 이제 부왕이 굶어죽었는가 옥지기를 불러 묻자, 옥지기는 왕비의 행동을 사뢴다. 이에 아사세왕은 크게 화를 내며, 마침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까지 죽이려 한다. 칼을 빼어 어머니를 죽이려 할 때, “역사 이래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부왕을 죽인 일은 많으나 어머니를 무도하게 죽였다는 말은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라며 간곡하게 설득하는 월광(月光) 대신과 어의(御醫) 기바의 만류로 어머니인 위제희 왕비를 궁실에 유폐하였다. 깊은 궁궐 속에 갇힌 위제희 왕비는 이와 같은 참혹한 일을 당한 자신의 박복함을 한탄하며, 부디 부처님께서 오시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발원한다. 영취산(사굴산)에 머물고 계시던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위제희 왕비의 마음을 헤아려 아시고는 몸소 많은 성중을 거느리고 왕사성에 나투시어 극락정토에 대한 설법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