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웹진 11월호

알레테이아,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 이야기 6

“일상(日常)에서 만나는 철학적 담론”

- 김영철 / 동국대학교 교수 -

일상의 문제를 길거리에서 공론화하는 철학

요즘 방송이나 인터넷 자료를 보면 길 위의 철학자 혹은 길거리의 철학자들이 많다. 물론 자칭 길거리의 철학자들이다. 혹시나 하는 기우에서 말하지만, 도심의 길거리에서 쉽게 보이는 타로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길 위의 철학이나 길거리의 철학이라는 표현이 지닌 실제 의미는 일반 대중과의 인문학적 소통과 그 내용의 공유를 강조하는 것이지 싶다. 특정 사람 혹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어려운 철학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철학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철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철학이 아주 작은 것이거나 어떤 소소한 것에 관한 관심이나 지적 호기심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철학은 소소한 일상에서 우리가 쉽게 놓치고 있는 중요한 어떤 것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철학적 행위는 비판적 사고라는 표현으로 불린다. 비판적 사고는 쉽게 말해서, 어떤 일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자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아니면 ‘왜’라는 질문 던지기라고 이해해도 괜찮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가장 위대한 서양 철학자로 첫 번째로 꼽는 소크라테스(Socrates)도 일상의 소소한 문제를 주제로 하여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의 일상 자체가 바로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서로 간에 정보를 공유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함께 고민하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일상의 소소한 문제나 주제를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그 가벼운 일상의 문제가 실제로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무엇이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는 거창하게 삶의 문제를 철학적 이론으로 체계화하거나 멋있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의 소소한 삶에서 삶의 가치나 참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이론보다는 실천적인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했고 또한 강조했다.

일상(日常)은 문자 그대로 ‘매일’ 또는 ‘날마다’를 뜻하는 개념이다. 사람들이 반복적인 행위를 하면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H. Lefebvre)는 “인간은 일상적이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일상은 그 의미와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표현하면 일상의 은둔성이다. 일상은 모든 사람의 삶의 터전이지만, 그 중요성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상을 그저 수동적으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일상을 능동적인 태도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참된 의미는 우리 눈에 그저 보이는 일상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숨겨져 있는 면에 있다. 그래서 일상은 참된 의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야 일상에 숨겨져 있는 의미와 가치를 알 수 있다. 조금 철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 자기의 삶에서 거리를 둘 때야 비로소 자기의 삶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삶은 니체(F. Nietzsche)의 표현처럼 일상의 노예에서 일상의 주인으로 바뀌는 삶을 뜻한다. 독일 철학자 헤겔(F.W. Hegel)도 일상에 중요한 철학적 소재가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중요한 철학적 주제를 일상의 소재들에서 가져온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일상에 대하여 생각하는 순간, 그 일상은 아마도 비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비일상이란 일상을 보는 것이다. 일상을 보면 일상이 다르게 보이지 싶다. 아마도 일상이 의미 있어 보일 것이다. 그러면서 일상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이다. 분명 지금까지의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 즉 비일상으로 의미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삶의 의미나 동기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길거리의 철학자들이 강조하는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찾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page 고대 그리스 아고라

일상은 ‘길거리’ 혹은 ‘길 위’라고도 표현되기도 한다. 사실, ‘길거리’라는 표현은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길거리는 ‘나’와 ‘너’가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길거리는 만남 혹은 소통의 공간이다. 일상의 장이다. 그리고 이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여서 소통하면, 그 공간은 광장이라고 불린다. 이 광장에서는 소소한 일상적 이야기가 공론화되어 그 의미가 중요한 문제로 확장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소소한 일상적 이야기가 담론화되어 공적인 문제로 그 의미가 깊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광장을 아고라로 표현했다. 아고라(agora)는 그리스 말로 '모이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즉 폴리스(polis)의 중심에 있는 광장을 말한다. 광장이 도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일종의 번화가를 뜻하고, 그 중심에 있는 쇼핑가를 뜻한다. 그래서 아고라는 시장을 뜻하기도 한다. 더 정확히는 ‘시장에 나오다’ ‘거래하다’의 의미이다.

과거의 시장은 오늘날의 시장과는 다른 기능을 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 활동만을 하는 중심지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토론으로 공유하면서 의사소통도 하는 곳이었다. 말하자면 일상의 평범한 문제를 공론화하는 곳이었다. 로마제국 시대에서는 아고라를 포럼(forum)이라는 라틴어로 표현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포럼이 바로 아고라의 뜻이다. 각설하고,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주요하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공론화하여 논의하면서 적절한 해결 방안을 찾는 행위가 이루어졌던 장소였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아고라를 공적인 의사소통이나 문제를 공론화하여 논의하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냥. 아고라는 길거리의 중심가, 즉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 혹은 번화가를 뜻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철학자들은 길거리에서 혹은 길 위에서 사람들과 일상을 토론하고 공유하는 의사소통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예나 지금이나 중심가, 즉 번화가를 선호하는 모습은 같다.

page 고대 로마의 트리아누스 시장

길거리에서 철학 하기는 소크라테스 이후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키니코스학파의 대표자인 디오게네스(Diogenes)도 일정한 거주지도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행복한 삶에 관한 올바른 태도를 전파하려고 했었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과의 일화로 유명한 철학자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에게 “무엇이든지 바라는 걸 나에게 말해 보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가리지 말아주시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디오게네스는 자신을 ‘개’, 즉 멍멍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개처럼 길거리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살았다. 아무튼 그래서일까? 디오게네스가 당시 활동했던 지금의 튀르키예(터키)에는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들개들이 엄청 많다.

스토아(stoa) 철학의 창시자 제논(Zenon)도 길거리의 광장에서 자기 생각을 전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광장이란 뜻의 스토아(stoa) 또는 스토아 철학이라고 불렸다. 스토아 철학이 길거리 혹은 길 위의 철학이란 사실은 광장에서 군중의 심리를 잘 파악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로마 군중들의 주요 관심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는 문제였다.

그래서 스토아 철학자들은 그 문제에 관한 답을 하려고 노력했다. 철학자인 세네카(L. A. Seneca)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 Aurelius) 황제 그리고 에픽테토스(Epiktetos) 등의 스토아 사상가들은 군중이 가장 많이 모이는 길거리의 광장, 즉 포럼(forum)에서 연설했다.

실제로 스토아 사상가 대부분은 명연설가로서 대중 스타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군중심리를 잘 이용하여 군중들이 그들의 철학 사상을 따르도록 했다. 로마 시대의 평민은 충성심이 매우 강했다. 왜냐하면 국가에 대한 충성이 바로 ‘잘 사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명예롭게 바쳤고, 로마는 대제국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로마 평민들의 충성심은 “개인은 원자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만 존재한다.”라는 스토아 사상가들이 길거리 광장에서 행한 연설에 기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