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웹진 11월호

법률속의 부처님법 이야기 6

의료과오소송과 약사여래본원경

- 서형교 / 청호불교문화원 상임감사 -

새벽 범종 소리에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소서

파아란 하늘이 가을 들녘에 내려 온통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시월
천등산 봉정사 뜰 가득 금잔화 피어나 부처님의 황금빛 미소를 머금고
극락전 처마 끝으로 가을 햇살이 부처님의 옷자락인 양 휘감아든다.

시월에 찾아든 봉정사의 풍광은 언덕을 오르는 소나무 숲길부터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품 안으로 안겨드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되어 어지러운 세상사를 잊게 한다. 절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에 관심이 많아서 살펴보았으나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과 극락전에는 주련이 없고 종각의 주련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願此鐘聲遍法界 (원차종성변법계)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나가서
鐵圍幽暗悉皆明 (철위유암실개명)
철위산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 다 밝아지고
三途離苦破刀山 (삼도이고파도산)
삼도의 고통과 칼산의 고통을 모두 벗어나
一切衆生成正覺 (일체중생성정각)
일체중생이 바른 깨달음 이루게 하소서

모든 중생들이 이 종소리를 들으며 온갖 고통을 벗어나 안락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라는 새벽 범종소리에 담긴 부처님의 염원이리라. 이런 부처님의 염원이 司法의 세계에도 두루 비춰서 쟁송과 다툼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나 갈수록 의료소송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을 보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그의 진료 결과에 대한 환자의 불만 등으로 상호 간의 불신이 갈수록 팽배해져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최근 2023. 8. 31. 대법원은 의료소송에 관한 종전 판례에서 진일보한 아주 의미 있는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바로 “대법원 2022다 219427 판결 [손해배상(의)]”이다. 사안의 개요와 판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망인(수술 당시 73세 남)은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넘어진 후 팔을 올릴 수 없어 그 뒷날 바로 피고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 병원 의료진은 MRI 검사 등을 거쳐 ‘오른쪽 어깨 전층 회전근개파열과 어깨충돌 증후군 소견’으로 진단하고, 전신마취 및 국소마취 후 관절경을 이용한 수술을 계획하였다. 이 병원 소속 마취과 전문의는 수술실에서 망인에게 전신마취와 국소마취를 하였고 간호사에게 망인의 상태를 지켜보도록 지시한 후 수술실에서 나왔다. 수술은 11:00경 시작되었는데, 수술 중 망인에게 저혈압이 발생하였고, 산소포화도도 하강하였다. 마취과 전문의는 11:17경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수술실로 돌아와 망인의 상태를 확인한 후 11:20경 혈압 상승제 등을 투여하였고, 망인의 상태가 회복되지 않자 수술을 중단시키고, 이 병원 의료진은 망인을 이대목동병원으로 전언하였으나, 13:33경 이대목동병원 응급실 도착 당시 망인은 심정지 상태였고, 그 무렵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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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안에서 진료상 과실이 없다는 피고 병원의 주장에 관하여 대법원은 마취과 전문의에게는 마취 중 망인에 대한 감시 업무를 소홀히 하여 응급상황에서 간호사의 호출에 즉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제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못한 잘못이 인정되고, 피고 병원 측에서 망인의 사망이 진료상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지 아니하는 이상, 진료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피고 병원 의료진에게 설명의무 위반, 심폐소생술 시행상 과실이 있다는 원고의 주장은 배척하고 피고의 책임을 60%로 제한하였으며, 장례비 손해 및 위자료를 손해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료상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손해가 발생하는 것 외에 주의의무 위반,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료 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서 환자 측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고, 현대의학지식 자체의 불완전성 등 때문에 진료상 과실과 환자 측에게 발생한 손해(기존에 없던 건강상 결함 또는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거나, 통상적으로 회복 가능한 질병 등에서 회복하지 못하게 된 경우 등) 사이의 인과관계는 환자 측뿐만 아니라 의료진 측에서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증명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환자 측이 의료 행위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에서 통상의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위반 즉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과실이 환자 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1)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경우에도 의료 행위를 한 측에서는 환자 측의 손해가 진료상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여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다2)고 하여 의료과오소송에 관한 법리를 좀 더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한편 같은 사안에 대한 형사사건(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1도 1833) 판결에서 대법원(민사사건과 같은 재판부)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마취과 전문의)이 직접 갑(이 환자)을 관찰하거나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신속히 수술실에 가서 대응하였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더 할 수 있는지, 그러한 조치를 취하였다면 갑이 심정지에 이르지 않았을 것인지 알기 어렵고, 갑에게 심정지가 발생하였을 때 피고인이 갑을 직접 관찰하고 있다가 심폐소생술 등의 조치를 하였더라면 갑이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 대한 증명도 부족하므로, 피고인의 업무상과실로 갑이 사망하게 되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피고인의 업무상과실로 인하여 갑이 사망하였다고 보아 피고인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인정한 원심 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3)하여 피고인의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함으로써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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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 본원경에는 “만수실리여, 만약 남자나 여자가 병으로 고통받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일심으로 그 병든 사람을 위하여 깨끗이 몸을 씻고 양치질을 하고 나서 환자에게 약을 먹일 것이며, 혹은 벌레가 없는 깨끗한 정화수를 떠놓고 이 주문4)을 108번 외운 뒤에 이 음식과 약을 먹게 하면 병자가 갖고 있던 질병의 고통이 다 소멸될 것이니라.”라고 하여 의사나 약사 등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모든 이들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제시하시고 있는데, 의사도 생활인이기에 영리를 도외시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애를 지녀야 하고 생명 외경(모든 생명은 소중하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의 수호자가 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당나라 때 명의 손사막(孫思邈)이 저술한 천금요방(千金要方)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자세에 대해 “위대한 의사는 의료술을 충분히 익히고(論大醫習業), 온 정성을 들여 의술을 펴야 한다.(論大醫精誠)”고 강조하고 있다.

의료인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으로서도 무조건 의사나 병원 측의 허물만 탓하며 헐뜯거나 내 편의 결함을 덮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상호 간에 마음의 상처를 남기지 않는 바람직한 해결을 모색해가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잡아함경에서 “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과 등지지 않으며 남을 해치지 않고 인자한 마음으로 남을 가엽게 여기면 이것을 남을 보호하고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라 한다(잡아함경 제24권 619경).”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지 않는가.

1) 여기서 손해 발생의 개연성은 자연과학적, 의학적 측면에서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될 필요는 없으나, 해당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의학적 원리 등에 부합하지 않거나 해당 과실이 손해를 발생시킬 막연한 가능성이 있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에는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2)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2다219427 판결 [손해배상(의)]


3)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1도1833 판결 [업무상과실치사·의료법위반]


4)약사여래 대다라니 : 나무바가바제 비살사구로벽유리 바라바아라사야다타아다야 아라하제 삼먁삼붇타야 다냐타옴 비살서비살서 비살사 삼모아제 사바하